인간의 존재는 감각의 좌표 위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그 좌표가 소거되고 신체적 감각이 무뎌지는 ‘감각의 진공 상태’를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스스로의 현존을 증명할 수 있을까. 28일까지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유기주의 개인전 ‘Hunting the unseen – Shadow Hunter’는 바로 이 실존적 물음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무너진 감각의 잔해 속에서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기호인 ‘숨결’과 ‘움직임’을 추적의 도구로 삼는다. 유기주의 작업 과정은 치밀한 설계와 통제된 우연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다. 작가는 캔버스 위를 유영하는 붓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흑연 가루를 풀어낸 물의 유동성과 자신의 들숨과 날숨에 모든 것을 맡긴다. 종이의 기울기에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작가의 호흡과 조응하며 왈츠나 탱고를 추듯 화면을 채워 나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흑연의 엉겨 붙음과 번짐은 미처 통제되지 못한 물질의 저항이자, 동시에 작가가 온몸으로 밀어붙인 의지의 기록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지점은 무정형의 흔적에서 형상을 식별해내는 ‘변상증(Pareidolia)’적 접근이다. 작가는 흑연의 심연 속에서 잃어버렸던 대상의 실루엣을 포착해 낸다. 이는 관람자에게도 동일한 능동적 지각을 요구한다. 작가가 제시한 흑연의 궤적은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관람객 각자의 심연을 투영하고 저마다의 형상을 건져 올릴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평면에서 시작된 작가의 시선은 공간 전체로 확장되어 ‘그림자’의 미학으로 귀결된다. 낮은 조명을 통해 일상의 사물들이 던지는 거대한 그림자는 실체와 가상의 위계를 뒤흔든다. 사소한 사물이 거대한 놀이기구로 전복되는 이 ‘환상의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가 믿어왔던 실재의 견고함을 의심하게 된다. 고정된 실체보다 파생된 그림자에 집중하는 작가의 태도는, 보이지 않는 본질을 쫓는 ‘그림자 사냥꾼(Shadow Hunter)’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유기주가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미학적 결과물로서의 작품만이 아니다. 그것은 신체의 한계라는 인간적 나약함을 껴안으면서도, 단 한 번의 숨결과 단 한 번의 흔들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끝내 증명해내려는 치열한 수행의 현장이다. 수많은 실패를 딛고 살아남은 흑연의 흔적들 사이에서, 관람객 또한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보이지 않는 좌표를 새롭게 발견하는 경험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