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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MI JUNG

빛으로부터 Aus dem licht
March 4  ━ March 14, 2026

부유하는 듯한 화면을 가만히 응시한다. 얼핏 보기에는 표면이 잔잔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얇은 막이 겹쳐진 듯 여러 색이 보인다. 그 안에서는 마치 세포가 증식하는 듯한 미세한 진동마저 감지된다. 이러한 진동은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덮이고 밀리고 다시 덮이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남겨진 흔적들은 층을 이루고, 색의 지층은 평면을 서서히 밀어 올린다.
작가는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며 여러 번 색을 겹쳐 화면의 깊이를 정제(精製) 한다. 색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스퀴즈로 두꺼운 물감 층을 밀어낼 때 예측 불가능한 궤적만 남는다. 이를 다시 다듬는 과정에서 몇 번의 선택이 더해지고 물감이라는 물질이 캔버스 위에서 서로 섞이고 깎이며 스스로 이미지를 발생시키도록 내버려둔다. 우연과 통제가 한 화면에서 얽히며 화면은 더욱 맑아진다. 동시에 이전보다 밀도는 더욱 단단해지고 견고해진 시간의 층위를 품게 된다.

전면에 펼쳐진 물감 사이로 스며드는 밝은색은 단순한 대비를 넘어 화면의 긴장을 조율한다. 색과 색이 맞닿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떨림은 또 다른 깊이를 만들어낸다. 겹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이 더 투명해진 것은 작가가 색을 다루는 데 있어 절제된 태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캔버스의 정면이 정제된 공간이라면, 측면은 색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겹겹이 쌓인 시간의 두께를 통해 측면은 화면이 형성되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김미정의 회화는 닫힌 구조인 동시에, 반복과 축적의 기록이다.
응축된 색의 표면 위에는 반복적으로 가느다란 ‘밝은 선’이 등장한다. 밀도 높은 지층 사이로 비친 가느다란 빛줄기. ‘하나의 곧은 선’처럼 보이지만, 응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화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열어두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색면을 투과하는 지점에서 색은 미세하게 번지고, 진동이 되살아난다. 화면은 마침내 숨을 쉬는 것처럼 보인다.

이 빛은 경계를 긋지 않는다. 색의 층위 위에 머물지만 분리하지 않고, 서로 다른 층이 스며들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선’은 화면의 깊이를 가늠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닫힌 구조로 수렴되기보다, 정지된 듯한 표면 위에서 또 다른 공간을 형성한다. 응축된 표면 아래에서 색은 진동하고 쌓인 시간은 화면을 내부로 확장한다. 결국 이 작업은 정지된 듯한 시공간에서 지속되는 감각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응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화면은 하나의 결말에 이르기보다, “자유로운 운동성”이 끊임없이 형성되는 공간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