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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vy Wave
Annual Emerging Artists Exhibit 2024

2024. 2. 15(목) – 3. 16(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는 고유의 시간과 리듬이 존재한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사건들이 촘촘하게 그물처럼 얽혀 있다. ‘캔버스’라는 ‘창’을 통해 소통하는 예술가들은 고유의 정서와 감성으로 ‘나’를 세상과 분리하는 동시에 마주하는 대상들과 분리시키며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인식한다. 개별 존재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와 ‘나의 것’을 확고하게 정립하고 ‘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아간다. 여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11명의 작가들이 모였다. 이들은 단일한 주제 아래 모인 것이 아닌 각기 다른 개성 및 다양성과 함께 앞으로의 작업 세계를 주목하고 지켜보고자 선정되었다. «Wavy Wave» 전시를 통해 잠재된 가능성을 깨우려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려 한다.



Ⅰ. 기억을 불러오기

기억을 소환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소환은 과거를 단순히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과 사유가 스며든 순간들의 집적이다. 체화된 이미지 그 자체를 불러오거나 이미지를 분해하여 흐릿하게 만든 채 호명한다. 때로는 이미지들을 산발적으로 떠오르게 하면서, 이미지를 중첩하여 전혀 새로운 감각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방법에 ‘배치’, ‘배열’, ‘변형’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미지들을 의미가 명징한 서사로 통일하는 것이다.


고서연(b.1993)은 유년의 경험과 기억을 소환한다. 녹음이 짙은 나무들과 드넓은 풀밭은 작가의 고향인 제주의 풍경으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야트막한 돌담과 나무의 높낮이를 통해 공간감을 연출한다. 화면 속 덩그러니 놓여진 ‘콘테나’(과일을 따서 담거나 저장할 때 사용하는 용기)는 어린 시절 몸을 웅크리고 숨을 수 있었던 도피처였다. 작은 도피처는 한순간의 몸부림을 잠재워 줄 뿐, 쓸쓸하고 외로웠던 마음을 달래줄 수 없었던 대상이기도 하다. 화면 한켠에 부유하듯 존재하는 건물 역시 이와 유사하다.


정지용(b.1999)은 마주하는 일상 속 풍경의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시간의 경과에 따른 감정의 변화에 주목한다. <몽유의 숲>, <사유의 숲>(2023) 등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유의 대상으로서 풍경은 낱개의 이미지의 반복과 조합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수묵과 채색의 조합을 바탕으로 매체의 변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장지에 수묵담채 기법으로 작업한 <몽유의 숲>과는 다르게 <사유의 숲>에서는 펄프지와 화선지, 밀가루풀을 배합하고 탁붓을 사용하면서 질감을 형성한다. 질감을 통해 화면을 바라보기는 촉감에 의해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지아(b.1999)는 내면의 풍경에 몰두하며 ‘희로애락’과 같은 삶의 징후를 공필화로 표현한다. 공필화는 중국에서 ‘국화(國畫)’로 일컫는데, 특히 현대의 공필인물화는 전통 회화를 바탕으로 서양의 사실주의와 융합된 것이 특징이다. ‘공을 들여 대상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리는’ 의미 그대로 인물의 피부, 머리카락, 장신구, 의상 등 화면에 드러나는 모든 대상들을 치밀하게 구성하여 표현한다. 인물화와 더불어 감정전이의 대상이 되는 꽃, 새 등 동식물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기하학적인 패턴의 배경처리와 파스텔톤의 색조는 평면성과 장식성의 시각적 효과를 전달하고 있다.


오예진(b.1997)의 작업은 내면의 부조화를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육체와 정신, 삶과 죽음, 고통과 치유 등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영혼이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한다. 대립되는 개념에 대한 성찰은 작업을 통해 얻어진다. 작가는 강박적으로 수많은 미세한 점을 찍는 수행의 과정을 거치며 형상을 드러낸다. 화면을 장악한 옅은 푸른색과 보라색은 여전히 존재하는 불안과 우울감을 의미할 수 있지만 그리는 행위를 통해 사회적 존재로 살아남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통은 살아가는 데에 있어 반드시 견뎌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한다. 오예진의 작품은 불안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인내력과 희생을 담고 있다.


김서연(b.2000)은 온라인에서 이미지를 수집하고 캔버스에서 재가공하여 새로운 관계와 맥락을 제시한다. 작가는 ‘이미지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주목하는데, 이미지의 무게를 가늠하는 척도는 ‘개인의 흔적’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정보는 끊임없이 축적되고, 무한복제 되며 재탐색도 가능하다.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선택된 이미지는 알고리즘을 통해 ‘디지털 흔적’ 만을 담고 있다. 디지털 흔적을 지우는 행위는 사각형의 캔버스 프레임으로 공간을 제한하고 표현적 붓질로 존재를 증명함으로서 실현된다.



Ⅱ. 은유와 단서들 그리고 초현실적인 풍경

머릿속을 부유하며 떠도는 생각들과 이미지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초현실적인 풍경은 단순한 이미지들의 나열이 아니라 내가 지금-여기에서 집중하며 고도의 섬세하고 정교한 형상들의 흐름속으로 유도한다. 감상자들로 하여금 현실 너머 초월적 세계를 만나기 위한 ‘관계항’들로 맺어진 공통된 설정을 보여주는 화면들은 있는 그대로 현상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와 본질적인 존재 구조를 밝히려 한다.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물질과 정신 등 이원적인 요소들이 대비를 이루는 듯 하지만 서로 공존하며 순환하고 있다.


박신엽(b.1985)의 작품을 대면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원(圓, circle)의 형상들이 포착된다는 것이다. <사바(Sahā)>(2023)를 살펴보면, 화면의 하단에는 아무도 타지 않는 회전목마, 서커스의 천막들, 롤러코스터가 있고 상단 좌우에는 태양과 달의 일부분이, 화면의 중앙에는 시계의 숫자들처럼 토끼, 뇌, 심장, 노인, 아이, 새장 등의 이미지들이 배치되어 있다. 한 화면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원’의 형상들은 ‘완전성’, ‘불멸성’, ‘전체성’을 의미한다. 동시에 고통을 감내하고 ‘참고 견디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은 아크릴 과슈를 사용하여 밀도감을 높였고 부드러운 질감과 차분한 색감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유기주(b.1987)는 회화, 영상, 조각, 도자기 등 다양한 매체의 실험을 통해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2012년에 발표한 <비문증 연작>에서 수채화의 번짐효과를 극대화하며 얼굴의 눈코입 형태를 불분명하게 처리함으로써 실존의 경계에 선 자아를 탐구하였다. 이후 2020년부터 흑백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특히 <부조리 극장>(2020-21)은 비가시적인 ‘떠도는’ 이야기들에 주목하여 부조리한 삶의 형태들을 고발한다.


이찬영(b.1997)의 작업에서 시간은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시간’은 영화나 비디오 게임의 속성으로 특히 비디오 게임에서 유저는 시간을 되돌려 환경을 재구성하고 등장인물들을 지배하여 레벨을 조정하거나 리셋시켜 미션을 수행하도록 유도한다. 작가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동적인 행태에 주목하고 이들을 게임 속 등장인물들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플레이어(player)’라 칭하는 가상의 인물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실체가 없는 ‘요정’만을 좇는다. 한편으로 캔버스에 왁스를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왁스를 칠하고 중첩된 표면으로 처리한 후 색을 칠하는 과정은 물질을 빛으로 전환하여 색을 통해 작가의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희은(b.1998)의 작업은 거대 사회에서 보이지 않은 규율과 통제로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그려낸다.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롤 플레잉을 기반으로 한 게임에서 플레이가 불가능한 캐릭터(NPC, Non-Player Character)에 투영한다. 국가나 회사 같은 조직을 게임개발사에 비유한다면 게임개발사의 룰에 맞추어 만들어진 ‘플레이가 불가능한 캐릭터’는 현대 사회 속 수동적인 인간유형에 비유할 수 있다. 화면의 배경을 가득 채운 압도적인 스케일의 인물들과 그 앞에 배치된 작은 인물들처럼 가상공간에서도 위계질서는 존재한다. 게임 속 장면의 전환으로 사라져 버리는 풍경들과 흐느적거리며 배경속으로 침잠하는 듯한 늘어진 인물 표현이 밝은 색채로 더 부각된다.


조현정(b.1987)은 지극히 평범하고 친숙한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고양이’가 그 대상으로, 고양이는 신석기시대 곡물 저장소에서 해충을 잡기 시작한 무렵부터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이 된 지금까지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다. 작가의 세심한 관찰과 따뜻한 시선은 고양이의 자세와 몸짓에 드러난다. 맑은 눈으로 마치 다가오듯이 정면을 바라보는가 하면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눈빛이나 낚시대를 향해 다리를 올리는 것 같은 제스쳐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고양이의 눈망울, 털 등 사실적인 표현기법은 과슈와 세필 붓의 사용과 함께 패턴화된 배경처리로 더욱 부각된다.


아챠리니 케손숙(b.1978)은 단일한 색상의 배경처리에 정면을 응시하는 소녀를 그린다. 아름답지만 애잔하고 어딘가 친숙하지 않은 뉘앙스는 인물의 상반신에서 양쪽 팔이 보이지 않거나 한쪽만 보이기 때문이다. 검정색의 배경처리는 더욱 그렇다. ‘키덜트(Kidult)’ 성향의 작가는 수집, 즐거움, 몰입, 현실도피 등 다양한 이유로 장난감을 수집하며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현대적이면서도 서양고전미술을 연상시키는 점은 작가가 이탈리아 피렌체에 머물며 르네상스 및 바로크 미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구도, 사실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명암법, 관념적 색채의 사용에 중점을 두고 인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물들을 병치하여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11인의 신진 작가들의 행로는 잔잔히 흐르는 물결처럼 아직은 큰 파동이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지점에 멈추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며 가변적인 ‘물’의 성질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물은 모든 사물을 투명하게 비춘다. 투명함을 이치에 맞게 생각해보면, 비어 있음을 발견할 수도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실체가 없는 것은 허공으로 텅 비어 있는 공간이다. 텅 비어 있는 공간은 모든 것을 이 안에 수용할 있어 충만한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 주제 의식, 매체의 탐구 등 개인마다 지향점이 다른 만큼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해석들이 존재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과 철학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주최/기획:  호리아트스페이스, 아이프미술경영

* 후원:  아이프칠드런, 원메딕스인더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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