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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연례 기획초대전

<Shalom, Elegant blessing>

2023. 03. 08(수) – 03. 25(토)


승연례의 팜트리(Palm tree),

인생을 닮은 우아하고 찬란한 축복의 나무


화면 한가득 부드러운 춤사위의 여운으로 충만하다. 마치 상쾌한 하늬바람에 온몸을 실은 흰 구름을 만난 듯, 더없이 개운한 기분이 든다. 승연례 화백의 그림은 선 긋기로 시작해 선 긋기로 끝난다. 호반(湖畔) 위 백조의 자태를 닮은 손끝이 붓처럼 화면을 노닌 흔적이다. 승 화백의 드로잉 회화는 ‘뽀송뽀송한 한 줄기 털실로 짠 목도리를 두른 감성’을 선사하고 있다. 


그림은 화가의 품성을 닮아간다고 했다. 늘 수줍은 소녀의 미소를 띤 승연례 화백의 정감 어린 표정에서 그녀만의 그림 언어를 충분히 짐작해낼 수 있다. 인공적으로 가공된 흔적이나 군더더기는 찾을 길이 없다. 마음속에 충만한 기운을 호흡하듯, 쉽고 자연스럽게 손끝의 리듬으로 완성한다. 특히 작품의 제목은 일관되게 ‘Palm tree’를 지속해왔고, 작품의 소재 역시 제목과 한결같다. 시원시원하게 사방으로 뻗은 나무의 외형적인 매력에 매료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토록 하나의 작품 소재에만 천착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종려나무, 포도나무, 유향나무, 사과나무, 뽕나무…. 성경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여럿이다. 이 중에 자주 언급되는 예는 종려나무(Palm tree)가 대표적이다. 일명 ‘대추야자’로 불리는 종려나무의 열매는 식용으로 쓰고, 이파리는 지붕을 잇는 재료로 사용되며, 나무는 목재, 꽃은 술의 원료로 쓰이니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시편 92:12-13) 


승연례 화백은 이처럼 성경에 묘사된 종려나무(Palm tree)를 그림의 일관된 소재로 다룬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성경에서 팜트리의 의미는 존경과 기쁨, 승리와 번영 등의 다양한 상징성으로 묘사된다. 물론 기독교적 시각에서 비유된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하나님 백성들’이란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히브리어에서 ‘번성하다’로 번역되는 단어인 ‘파라흐’는 ‘나무줄기에서 가지들이 뻗어 나오는 것’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단어가 ‘흥하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결국 한 몸통의 줄기에서 사방으로 뻗친 잎줄기와 풍성한 열매를 지닌 종려나무의 형상으로 ‘의인의 번성함’을 묘사한 셈이다. 


승 화백의 조형적 어법은 아주 간결하고 담백하다. 표면에 적당한 질감이 느껴지는 판화지에 크레용 한 재료로 리듬을 탄 반복적인 드로잉 선 긋기로 완성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쭉쭉 뻗은 선들을 보면 속도감의 잔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화의 일필휘지(一筆揮之)에 과감하고 명확한 작가적 신념이 뚜렷하게 더해졌다. 일정한 속도의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한 그루 혹은 한 쌍의 종려나무 마지막 이파리를 긋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필선의 흔적이 큰 특징인데, 그 선들이 반복적으로 그어지는 과정에선 아주 안정된 호흡이 유지된 고요한 리듬감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을 놓칠 수 없다. 


흔히 그림자가 강할수록 빛도 더 찬란하기 마련이다. 종려나무 역시 그 자태가 더욱 아름답게 돋보이는 것은 자라는 주변의 환경이 대개 삭막한 광야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사막같이 열악한 환경임에도 아랑곳없이 사계절 동안 변함없이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이다. 그것은 종려나무의 깊은 뿌리가 오아시스 샘물에 닿아 있기에, 드넓은 죽음의 사막에서도 종려나무의 존재는 생명의 희망으로 여겨진다. 이 역시 ‘하나님의 뜰’인 오아시스 샘물에 비유되며, 생명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의 성령에 비유된다. 승 화백도 이런 믿음의 징표로 종려나무를 선택했을 것이다. 


더구나 한 그루의 종려나무가 연간 200kg 가까운 열매를 생산하고, 50년이 넘어서면서 가장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고 하니 ‘인생을 닮은 찬란한 축복의 나무’가 아닐 수 없다. 승연례 화백의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단순히 ‘팜트리 풍경 초상’에 머무르지 않고, 종려나무 묘사를 통해 인간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가령 나란히 선 두세 그루의 종려나무가 한 쌍의 연인이나 부부 혹은 가족을 연상시킨다. 또한 종려나무 주변에 울타리를 둘러 자연스럽게 화목하고 안정된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는 형국을 연출해 볼수록 따뜻한 그림이다. 


종이 바탕에 크레용으로 똑같은 소재를 다룬 그림이지만, 작품마다 제각각 서로 다른 표정과 감성이 담겨 있다. 전반적으론 담담하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이 주조를 이루면서도 푸른색, 붉은색, 연두색, 보라색 등의 색조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어쩌면 각각의 작품에서 봄의 희망, 여름의 열정, 가을의 풍요, 겨울의 평온 등의 감성적 기호로도 그림을 읽을 수 있겠다. 승연례 화백이 지닌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로 자연의 가장 순수한 찰나를 포착한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승연례 화백의 Palm tree 연작은 ‘자유로움 속에 담긴 우아한 품위’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녀의 팜트리 드로잉 회화는 사막 위를 정처 없이 배회하면서도 즐길 수 있는 ‘자유분방함 속의 낭만’을 표현해낸다. 한편으론 세련된 빈티지 클래식 음률을 연주하면서, 특정한 유행에 얽매이지 않는 고고한 선율을 선물한다. 안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편안하고 멋스러운 선묘의 자취를 따라 즐겨볼 때, 비로소 ‘승연례의 그것’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우아하고 세련된 선(線)의 유영(游泳), 위트 넘치는 디테일, 다채로운 강약 조절, 자연스러운 실루엣 등의 종합이다. 선들의 중첩이 거듭할수록 화면구성은 더욱 견고해지면서, 소재로써의 ‘종려나무 그 이상’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이외에도 성경에 묘사된 종려나무의 인상들―‘의인’(시 92:12), ‘신부의 품위와 미모’(아 7:7-8), ‘영화로운 통치자’(사 9:14) 등―을 그림의 기반으로 삼고 있을 것이다. 승연례 화백의 종려나무가 단지 성경에 등장하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작가적 신념으로 다져진 믿음이 스미어들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 주최: 호리아트스페이스 대표  김나리

* 기획: 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대표  김윤섭

* 후원: 원메딕스인더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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