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2022 호리아트스페이스 젊은 기획자 후원전
왜 호랑이는 고양이가 되었나
2022. 1. 13(목) – 2. 10(목)
(일/월/공휴일 휴관)
호리아트스페이스(대표 김나리)에서는 개관 이후 50대 전후의 작가를 중점으로 조명해온 것과 연계해, 올해 2022년부터 차세대 젊은 기획자 발굴과 후원 프로젝트를 연1회 시작한다. 첫 번째로 선정된 기획자인 배민영(39)은 독립큐레이터로서 배렴가옥 기획전시 <STAY>, <나의 오늘 미술사> 등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전통과 현대를 재해석한 전시로 주목받아 왔다. 그가 기획한 이번전시의 제목은 <왜 호랑이는 고양이가 되었나>이다. 원래 두 동물은 같은 ‘고양이과’로 알려졌지만, 실상에선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이미지로 인식되어 있다. 초대된 젊은 작가 8명의 작품으로 재해석된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일상생활에서의 편견’을 다시 생각해보는 전시가 되리라 기대한다.
호리아트스페이스 대표 김나리
<왜 호랑이는 고양이가 되었나>는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아 호랑이를 주요 소재로 하되, 덩치가 더 큰 호랑이가 오히려 ‘고양이과’라는 사뭇 재밌는 사실을 근거로 한 비유적인 메시지를 담은 8인전이다. 의도적으로 유아적인 제목을 취했지만, 우리의 일상을 다시 곱씹게 되는 타이틀이다.
사실 호랑이는 절대 고양이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생물학적 분류로는 처음부터 '고양이과'였다. 또한 호랑이 띠도 있고 개띠도 있는데 고양이띠는 없다. 우리가 인식 속에서 특정 언어로 분류를 하고 영역을 허용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상을 어떤 언어로 분절하고 또한 뒤집어 보며 다양하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연과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풍성해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증정하는 ‘고양이 달력(The Cat Calendar)’ 역시 ‘음력 달력’이다. 실제 생활에서는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음과 양을 바꿨을 때 달라지는 인식을 경험하게 하는 기념품이다.
호랑이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실제로는 함께 살 수도 없고 마치 전설 속 존재처럼 영험한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호랑이는 고양이과이고 고양이는 이제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연초 많은 작가들이 기복의 의미로 호랑이 그림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본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호랑이의 친근하고 귀여운 모습이 현대적 민화에서부터 팝아트까지 다양한 장르로 스며들고 고양이에서 산해경의 상상 속 동물까지 다양한 모습을 한 호랑이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10년 전과만 비교해도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면 그에 덩달아 애완용 호랑이랑 누워있는 것도 올라오는 현상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결국 우리의 생활모습과 인식이 변화하는 것이 실은 "호랑이가 고양이로 변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미술시장에서의 인식도 최근 10년 간 많이 변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여행이 어려운 시대, 새로운 관심으로 그림 시장이 20년 만에 활황인 지금 ‘호랑이 그림’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이제 더 이상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오는 늠름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집에 걸어두지 않고, 더 힙한 호랑이 그림, 고양이 그림, 그리고 다른 동물과 식물들, 호랑이의 기운이 느껴지는 겨울 산의 그림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 큐레이션의 중요한 맥락이다.
"곽수연의 그림은 의인화한 반려동물에 대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민화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동물의 모습에서 인간의 욕망에 대한 풍자가 읽힌다." 최근 출간된 <고양이, 우리 그림 속을 거닐다>(고경원 저, 야옹서가)에서 '강아지 옆에 또 고양이'로 소개된 곽수연 작가는 민화 호랑이로 몇 종의 교과서에 실린 바 있고, '독서상우', '무릉도원' 등에서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며 개구쟁이 같은 고양이의 모습들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명 중 하나인 ‘호호호(虎虎虎)’가 말해주듯 호랑이의 기운을 팝아트로 유쾌하게 풀어내 온 서은선 작가는 이번에 신작 ‘염원하다’를 비롯해 자신만의 색깔로 새해의 분위기를 한층 북돋울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픽적이면서도 손맛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적이다.
한복을 입은 여인의 일상을 그려온 신선미 작가는 전통미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장면 속에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들어가 있는 고양이의 여유로운 모습을 통해, 속세를 떠난 야생이 아니더라도 우리 생활 속에 고양이가 주는 유유자적의 미학을 보여준다.
또한 숲을 대형 아크릴 작업으로 선보여 온 박현지 작가는 최근 많은 수강생을 배출하기도 한 터프팅 작업을 3층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가벽을 꾸밈으로써 젊은 감각으로 야생을 실내로 들여오는 역할을 맡았으며, 소형 천 작업이나 터프팅 거울 등이 전시장 곳곳에서 생동한다.
3층의 분위기가 귀엽고 활력이 넘친다면, 4층은 미니멀하거나 사뭇 진지하다. 4층 메인에는 산의 기운을 그려온 류갑규 작가의 최신 작업인 ‘빙폭타다 (BlueIV)’가 위치하며, 호랑이가 숨어 있는 듯한 겨울 산의 에너지를 장지에 수묵채색, 과슈로 담아냈다.
이 전시에 섭외되기 전인 작년 어느 날 호랑이를 그리는데 몸통만 칠하고 무늬를 넣지 않았을 때 고양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게 너무 신기해서 관객에게 물음을 던지고 싶어 호랑이의 갈색 몸과 검정 얼룩으로 물음표 형상을 만들었다는 ‘호랑이일까?’를 비롯해 동물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겹쳐 그리고 배치가 묘한 형상을 보여주는 김경원 작가는 이번 전시가 최근 생각하던 주제와 같았다고 말한다.
김여옥 작가의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느낌을 보여주는 고양이들은 반입체와 설치 작품으로서, 2022년 ‘검은 호랑이해’를 맞아 ‘흑묘’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아직까지도 이를 ‘도둑고양이’라며 부정적으로 인식, 묘사하며 심지어 길고양이를 공격하는 이들도 있다는 데 대해 가슴 아파하며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산해경을 모티브로 한 손창은 작가의 작업들은 전시장 곳곳의 공중과 바닥 등에 배치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령 ‘마복 馬腹’은 생김새는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을 하고 소리는 어린애 같으며 사람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타위 𧕛圍’는 사람의 얼굴에 양의 뿔, 호랑이의 발톱을 하고 있다. 늘 저수와 장수의 깊은 곳에서 노니는데 물속을 드나들 때면 광채를 발한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신령을 가졌거나 요괴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관점에서 쓴 선악이 없는 순수한 동물들을 악의 형태로 묘사해왔던 건 아닌지 늘 의심하게 된다. 작가는 “인간이 가장 나쁘고 악하다. 그러하기에 인간이 가장 강한 것이다.”라고
문제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_배민영(39) 독립큐레이터
* 주최: 호리아트스페이스
* 자문: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 기획: 배민영 독립큐레이터
* 후원: 원메딕스인더스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