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안창홍의 디지털펜화 
<유령패션(Haunting Loneliness)>

2021. 2. 15(월) – 3. 13(토) 


안창홍의 디지털펜화 <유령패션(Haunting Loneliness)> 시리즈는 ‘비움의 미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워짐의 허망함’을 고발한 것이다. 그림 속엔 투명모델이 홀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무리 멋스럽게 포즈를 취한들 정작 주인공은 보이질 않으니 허탈하기 그지없다. 제각각의 개성을 지닌 패션은 우리 현대인의 얼굴이다. 이 옷의 주인공들은 과연 어떤 신념으로 삶을 불태우고 있었을까? 열병처럼 뜨거웠던 그 집념의 열정을 과연 되살릴 수는 있을 것인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 


최근의 디지털펜화 ‘유령패션’ 시리즈 영문표기를 ‘Haunting Loneliness’으로 했다. 대략 사전적 해석은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무서워서) 잊을 수 없는 고독 혹은 외로움’ 정도이다. 입거나 걸친 것들이 아니라, 그 모델의 심리상태에 주목한 것이다. 안창홍이 그린 욕망엔 지나친 허욕(虛慾)을 경계하는 중용(中庸)의 도가 담겼다. 한편으론 시대의 아픔을 깨닫게 하는 자각몽(自覺夢)이다. 


작가는 2019년 경남도립미술관 개인전 “안창홍 : 이름도 없는 / 기록을 기억하다”의 전시에서 권력자의 역사에 가려지고 잊혀진 소외된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선보였다. 단지 이름만 없는 이들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묻혀버린 익명의 인물들을 ‘두 눈을 가린 얼굴’로 상징화했다. 눈을 가린 초상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에둘러 표현했던 2012년 ‘아리랑’ 시리즈부터 시작됐다. 당시 개인전에서 “인물들이 눈을 감고 있으면 관객들은 그 너머 내면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눈을 가리거나, 빈 동공의 표현법은 최근의 신작 ‘유령패션’ 시리즈와도 통한다. 대량소비사회의 빛과 그늘, 도시의 공동현상(空洞現象)과 공허함, 그 속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우리들의 모습, 화려함 뒤에 가려진 폭력과 야만성, 넘쳐나는 물질과 증발해버린 정신성, 껍데기만 떠도는 유령의 도시…. 안창홍의 ‘유령패션’은 결핍과 잃어버림에 대한 진혼서시(鎭魂序詩)를 대신한다. 


이전의 작품들과 새롭게 선보인 디지털화를 연결 짓는 요소는 오랫동안 지속해온 ‘자본과 성(性)과 권력의 함수관계’에 대한 주제의식이다.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에 대한 연구는 ‘안창홍 스타일 작품’을 지탱하는 뿌리나 마찬가지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어김없이 현대도시의 삶이다. 그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 담긴 현대성과 감각적인 패션 스타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작가만의 메시지를 담아낸 것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안창홍의 디지털펜화<유령패션(Haunting Loneliness)> 시리즈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관람객을 만난다. 우선 작품이미지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원하는 작품이미지를 골라서 소장할 수 있는 디지털액자 방식이다. 선택한 디지털액자 겉면엔 안창홍 작가의 드로잉이 그려진다. 다음은 완성된 이미지를 디지털 프린트한 에디션 작품이다. 주로 30호(90.0×72.7cm) 크기는 에디션 수량 20장, 40호(100×80.3cm) 크기는 에디션 수량 5장으로 이뤄진다. 


디지털펜화를 그릴 수 있는 기기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안창홍은 굳이 스마트폰을 고집한다. 최신식 스마트폰은 통신 이외에도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들의 앱(app)이 탑재되어 있다. 손안의 작은 화면이지만, 스마트폰의 디지털펜 한 자루면 어디서든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원하는 대로 손쉽게 그려낼 수 있다. 그려진 디지털원화를 시차에 상관없이 주고받을 수도 있다. 또한 작은 화면 속에서 그리다보면 다소 거친 터치들이 남을 수 있다. 작가는 이걸 ‘디지털화(畵)의 손맛’이라 여긴다. 그때그때의 작가적 감성과 감정이 묻어나는 촉감적인 시각효과인 셈이다. 


디지털펜화의 제작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안창홍 작가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Galaxy Note20 Ultra 5G’이다. 먼저 그림의 밑바탕이 될 사진이미지는 인터넷상에 떠도는 풍부한 자료들 중에 수집한 것이다. 선별된 사진 위에 스마트폰 앱을 통해 그리기 방식을 선택 후, 차용한 사진을 지우고 덧붙여 그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완성해나간다. 그러다보면 1차적인 사진도상의 이미지나 느낌은 전혀 다른 감성의 디지털화로 재탄생한다. 


안창홍의 작가여정엔 늘 논란의 시비가 뒤따랐다.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어김없이 충격적인 자극을 선사했다. 그렇다고 사회적 규범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길을 여는 가이드 역할이었다. 처음엔 다소 헛갈리고 혼란스럽지만, 지나고 보면 안창홍의 제언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전엔 작품의 내용과 표현범위가 이슈였다면, 이번 디지털펜화는 표현 재료와 방식에 대한 생각거리를 내줬다. 나아가 이번 전시는 디지털시대에 창작행위와 이미지 활용의 범주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획: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대표 김윤섭 

*주최: 아이프, 호리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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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홍 安昌鴻, (1953-)